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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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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03.29

 

오늘도 햇살이 눈 부신 한가한 오후다. 

긴 겨울을 지나고도 한참 동안 기다리다 열어놓은 접이식 문 사이로 두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다 마신 커피잔을 놓고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하는 카페 주위에는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많아서인지 유달리 남자 손님들이 많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의외로 남자들도 여자들만큼이나 커피숍에 앉으면 할 말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다 마신 커피잔 바닥에 커피 가루가 말라 있을 텐데 다들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한가하게 앉아 지나간 잡지나 뒤적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은정의 밝은 목소리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책을 보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다시 은정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남자들이 주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커피 추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진한 커피 향과 함께 두 잔의 아메리카노가 손님들에게 전해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잡지만 뒤적이며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윙윙대는 진동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수진이의 전화였다. 

내일 머리 하러 갈 건데 같이 가자는 등 또 별 하찮은 수다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매장을 둘러보는데 새로 온 듯한 테이블의 남자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다기보다는 그 손님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그 손님은 살짝 미소를 띠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나도 살짝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양복들에 서류 가방들로 봐서는 외근을 나온 듯했다. 

내가 쳐다보는 사이에도 그 남자는 상대편과 이야기하며 가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남자가 쟁반을 들고 컵을 돌려주러 다가왔다. 

 

"형수님, 저 모르시겠어요?"

 

"네?"

 

혹시나 했는데 나를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남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 모양인데 언뜻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누구신지…. 제가 잘 기억이…."

 

"저, 이정민이라고…. 선배님 후배입니다. 예전에 같이 식사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요."

 

"어머! 미안해요. 오랜만에 봬서 제가 못 알아봤어요."

 

 

그제야 기억이 났다. 과거에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할 때 신입으로 들어온 남편 대학 후배였다. 

남편, 정확히 말하면 전남편과 살 때 한두 번 본 것 같았다. 

인상 좋고 서글서글 한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봐서인지 많이 샤프해져 있었다. 

 

 

"여기 커피숍 하세요?"

 

"네"

 

"아…. 그러세요. 저 여기 근처에 일 때문에 자주 오는데 몰랐네요"

 

"오픈 한지 얼마 안 됐어요."

 

"네…. 그럼, 자주 들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자주 오세요"

 

나는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도 환하게 웃으며 다시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개새끼!'

 

속으로 전남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애써 잊으려 머리를 저었다. 그러다 은정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사장님 아시는 분이세요?"

 

"응…."

 

"잘생겼다…."

 

"어이구…. 너는 남자들만 보면 잘생겨 보이냐? 네 남자 친구한테 이른다."

 

"그냥 하는 소리죠…. 호호…. 근데 잘생긴 건 잘생긴 거죠…. 호호호"

 

 

은정의 말을 들으며 생각해 보니 그가 옛날에 봤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몸도 날씬하고 꽤 남자다워 보였다. 

그래서 얼른 기억이 안 났었나 보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그를 만났던 기억도 어느덧 지워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이틀에 한 번씩 골프 연습장 가고, 느지막이 가게에 나와 커피 냄새 맡는 평범한 일상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한 커피숍도 아니었고 올케언니의 친구가 하던 가게를 언니가 억지로 인수해서 해보라고 했었다. 

혹시 내가 우울증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그럭저럭 장사도 되고 시간 보내기는 좋았지만 좀 지나니 그나마도 지루했다.

 

 

아무튼 그날도 따분한 평범한 날 중의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 은정이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가게가 사무실 주위라서인지 저녁 시간에는 좀 한가한 편이다.

 

아무도 없는 가게 문이 열리며 한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바로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왔던 정민 씨였다. 

나는 웃으며 그를 맞았다. 

남편과의 관계야 어찌 됐든 가게에서는 손님이었다. 

 

 

"또 오셨네요?"

 

"네. 근처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다 들렀습니다."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그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은정이는 커피를 뽑았다. 

다른 때면 커피가 나왔다고 손님을 불렀겠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손님이고 가게도 한가하기에 나는 직접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들고 그가 앉은 테이블로 갔다.

 

 

"회사는 계속 다니시죠?"

 

"네. 아직 다니고 있어요."

 

"진급하셨겠네요?"

 

"네. 지금은 대립니다."

 

"그러고 보니 본지도 꽤 오래됐네요."

 

"그러게요. 벌써 한 사오 년 된 거 같네요."

 

 

그가 웃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근데 형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워낙 미인이시라 처음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보겠던데요."

 

"호호…. 고마워요. 저도 이제 늙었죠. 벌써 사십 댄데요."

 

"그런 말씀 마세요. 누가 보면 저보다 어리게 보겠는데요."

 

"호호호…. 말이라도 고마워요."

 

정민의 말이 입에 발린 소리라 할지라도 기분은 좋았다. 오랜만에 남자와 일 때문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정민의 말에 나는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정민이 말하는 소문은 남편과의 이혼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서로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정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힘드시겠어요…."

 

"힘들긴요. 벌써 다 잊어버렸는데…. 그런 얘기는 그만하죠."

 

"아!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뇨. 사과까지는…. 사실인데요. 뭘…. 근데 결혼은 하셨어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에 화제를 돌렸다.

 

 

"아뇨….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네요. 허허"

 

"어머!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올해 서른셋인가요?"

 

"아뇨. 아직 서른둘입니다."

 

"아직 늦은 건 아니지만 곧 하셔야겠네…. 눈이 너무 높으신 거 아니에요?"

 

"제가 눈이 좀 높습니다. 그러니까 형수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바로 할 텐데요. 하하하"

 

"사실을 립서비스처럼 하시네…. 호호"

 

"하하하…."

 

어느새 어색한 분위기는 가시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은정의 말대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덩치가 큰 남자였지만 왠지 귀여워 보였다. 나이가 어려서인 듯했다.

 

 

한참을 둘이 재미있게 대화하다 보니 은정이가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가게를 닫을 시간이되 버린 모양이었다. 

정민도 눈치를 채고 가방을 챙기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나는 얼른 쟁반을 챙겨 은정에게 가져다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민을 문 앞까지 나가 배웅했다.

 

"다음에 또 봬요!"

 

"네 형수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활기차게 인사한 정민이 뒤를 돌아 사라져갔다.

 

 

나는 정민을 보내고 은정이와 얼른 정리를 하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생각해 보니 참 오랜만에 누구와 유쾌한 수다를 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혼한 뒤로 친구들과 만나면 친구들의 가식적으로 걱정하는 듯한 태도와 나를 신경을 써주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워 될 수 있으면 안 만나거나 만나도 혼자 일찍 자리를 뜨곤 했었다. 

그러다 간만에 정민과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았다. 

쌓인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듯한 느낌이었다.

 

텅 빈 집에 혼자 돌아와 샤워하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혹시나 해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수업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티브이를 보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 통화를 하고 주말에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이 들려고 누웠는데 아까 정민과 대화하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면서 자꾸 정민의 모습이 그려졌다. 무슨 주책인지….

 

 

다음 날 아침 운동갈 준비를 하는데 이상하게 정민이 생각났다. 그리고 헬스를 하면서도 자꾸 그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날 저녁 영업이 끝날 무렵이 되자 정민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마치 기다리던 애인이라도 온 듯 속으로 반가웠다. 

 

이상하게 정민과 대화를 하는 게 즐거웠다. 오히려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잘 맞는 듯했다. 

그리고 영업을 마칠 시간이 되자 정민이 어려운 듯 말을 꺼냈다. 

 

 

"매일 이렇게 늦게 끝나세요?"

 

"거의 그렇죠…. 토요일 빼고는요. 왜요?"

 

" 그럼 토요일 날 시간 되시면 저녁이나 같이하시죠. 제가 대접할게요."

 

"음…. 그래요. 밥이나 한번 먹죠."

 

나는 정민의 제의에 선뜻 대답했다.

 

 

나중에는 주책없이 그런 게 아닌가 후회도 됐지만, 당시에는 거절할 생각을 전혀 못 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잠을 뒤척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 해보려고 했지만 되질 않았다. 

 

 

'그냥 밥 한번 먹는 건데 뭐….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드디어 토요일이 되고 저녁 무렵 가게로 정민이 찾아왔다. 

나는 이미 일찌감치 은정이를 보내고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형수님…. 영업 끝났어요?"

 

"아…. 토요일은 일찍 닫아요."

 

"형수님 뭐 드실래요? 좋아하시는 거 말씀하세요."

 

"전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정민 씨 좋아하는 걸로 해요"

 

"그럼 근처에 생등심 잘하는 데가 있는데, 고기 어떠세요?"

 

"좋죠!"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사실 메뉴는 상관이 없었다. 그가 김밥집을 가자고 해도 갈판이었다. 

 

 

사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왠지 들떠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속으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첫 데이트를 하는 소녀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가슴이 설렜었다.

 

당연히 남녀 간의 첫 데이트였으면 고급 레스토랑이 좋았겠지만, 정민과 나로서는 어찌 보면 생등심이 더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차를 가져오지 않은 정민을 내 차에 태우고 정민이 가르쳐주는 데로 식당을 찾아갔다. 

고급 한우전문점이었다. 

정민이 예약을 해놓은 듯 우리는 직원의 안내로 룸으로 들어갔다.

 

 

"형수님!"

 

주문을 하고 나자, 정민이 나를 불렀다.

 

"네?"

 

"저기…."

 

정민이 힘겨운 듯 말을 이어갔다. 

 

 

"저기…. 선배님하고 관계도 그렇게 되셨고 한데, 제가 자꾸 형수님이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고 해서…. 그냥 누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전 괜찮아요…. 정민 씨 같은 든든한 동생 생기면 좋죠. 호호…."

 

"그럼 누님도 말 놓으세요. 그래야 덜 어색하죠."

 

"어머…. 그런가? 호호…. 그럼 말 놓을게."

 

"그러셔요. 누님…."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나 동생을 하기로 했다. 

 

 

즐겁게 떠들며 식사를 마치고 정민을 태우고 정민의 집으로 향했다.

 

"누나…. 오늘은 처음이라서 제가 여기서 봐주는데, 다음에는 술 한잔하셔야 해요. 하하…."

 

어느새 정민은 누님도 아니고 누나라고 부르며 거의 반은 야자를 하고 있었다.

 

 

"응. 담에 술은 내가 살게."

 

"오케이! 콜.... 담주 토요일 저녁 6시!"

 

"콜!"

 

나도 기분 좋게 약속했다. 

 

 

정민을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주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에 가는데 가슴이 뛰며 뭔가 모를 흥분이 몰려왔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눕자 다시 정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정민을 생각하자 웬일인지 아랫도리가 뻐근해졌다. 

정말 몇 년 만에 다시 살아나는 흥분이었다.

 

 

일주일이 정말 긴듯했다. 토요일 날은 아예 가게를 쉬었다. 

나는 아침부터 마사지 샵에 가서 관리를 받았다. 

점심을 대충 먹고는 시간을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십 년 같았다.

 

 

집에서 나서야 할 시간 두 시간도 전에 이미 옷까지 차려입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핸드폰이 울렸다. 

 

 

"누나…. 다 와 가는데 나오세요"

 

"응. 알았어…. 그럼, 정문 앞에서 기다려…."

 

나는 얼른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집을 나섰다.

 

 

"아이고…. 우리 누님 완전 연예인이네…. 걸어오는데 눈이 부시네…."

 

"호호….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

 

"오늘은 어디로 모실까요?"

 

“응.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내가 시키는 데로 가!”

 

“네! 누님….”

 

정만은 활기차게 대답하고 내가 가르쳐 주는 데로 차를 몰았다. 

 

 

얼마 후 우리는 의왕의 백운호수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발렛파킹을 맡기고 식당으로 들어서며 정민이 말했다.

 

 

“이런데 올 거면 누나 차로 올 걸. 내 차가 왠지 쪽팔리네…. 누님 오늘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래도 누나가 사려면 이 정도는 사야지. 호호….”

 

“알았어…. 그러면 2차는 내가….”

 

“그래. 2차는, 네가 사라….”

 

가볍게 와인을 한잔하면서 정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툭툭이던지는 정민의 야한 농담도 받아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누님은 혼자 계시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정민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응. 그냥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그러지…. 그래도 요즘 너하고라도 이런저런 이야기 하니까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더라.”

 

“그렇죠? 역시 내가 누님한테 도움이 될 줄 알았어. 하하…. 제가 좀 귀염성이 있잖아요!”

 

“어이구 귀엽긴…. 덩치는 산만해서….”

 

“헐…. 그럼 안 귀여워요?”

 

“그래…. 귀여워….”

 

“저한테라도 스트레스 푸세요. 필요하시면 때리면 맞아라도 드릴게요. 후후….”

 

“오…. 너 약속했다! 나중에 내가 때리고 싶으면 맞아 줘야 한다! 알았지?”

 

“네. 얼마든지요…. 그럼, 오늘 2차는 저하고 술 한잔하시는 겁니다!”

 

“그래 한잔하지. 뭐…. 간만에 술주정 부려도 받아 줄 사람 있으니 좋네.” 

 

 

우리는 식사하고 나와 다시 정민의 차를 탔다.

 

“누나 뭐로 하실래요? 맥주? 아님 양주?”

 

“그냥 네가 좋은 걸로 해. 나는 상관없어….”

 

정민이 차를 몰고 분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둘 다 집이 분당이니 당연히 거기가 편했다.

 

정민이 아는 데가 있는 듯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로 올라갔다. 

정민이 2층 버튼을 누르는데 보니 2층에 맥줏집이 있었다. 

 

 

제법 큰 규모의 호프집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정민이 다시 내 팔을 잡아끌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누나 여기 너무 시끄럽다. 좀 조용한 데로 가요”

 

“그럼 어디가?”

 

“그냥 맥주 먹지 말고 가볍게 양주나 한잔할까?”

 

“그래…. 그러지. 뭐….”

 

사실 나는 술은 별로 못하지만, 맥주보다는 양주를 좋아했다. 왠지 맥주는 살이 찔 것 같은 느낌이라 마시기가 좀 싫었다.

 

 

나는 정민을 따라 ‘OO 노래바’라고 간판이 붙은 가게로 들어갔다. 

남자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들어가니 영화에서나 보던 룸살롱 분위기였다.

 

 

“여기 여자들 있는 술집 아냐?”

 

나는 자리에 앉으며 정민에게 조금 당황한 듯이 물었다.

 

 

“하하…. 여자들은 불러야 오는 거고요. 그냥 노래방 같은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 노래방에서는 양주 못 먹잖아요. 이런데 처음 오시는 거죠?”

 

“응. 노래방은 가봤어도 이런 데는 처음이다.”

 

“그냥 좀 비싼 노래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가씨들 있는 룸살롱은 아니고요. 하하….”

 

“그렇구나….”

 

사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보면 시끄러운 노래방보다는 나아 보였다. 

일단 남의 시선 신경 안 쓰고 정민과 둘만 한 공간에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웨이터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쟁반에 물병과 물수건을 받쳐 들고 들어와 메뉴판을 주며 주문을 받았다. 

정민은 익숙한 말투로 17년산 양주와 과일 안주를 시켰다. 

 

 

“이런데, 많이 왔었나 봐?”

 

“에이, 누나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잖아. 근데 오히려 조용하고 좋지 않아요?”

 

“그러기는 하다.”

 

“제가 오늘 누님 도우미 해드릴 테니까 스트레스 확 풀어보셔. 후후”

 

“어이구…. 그럼, 도우미가 별로라서 바꿔 달라고 해야겠다. 호호….”

 

“헐…. 대신 팁은 안 받을게. 하하….”

 

노크 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양주와 얼음통을 들고 와서 약간의 마른안주와 함께 내려놓고 나갔다.

 

 

정민이 양주를 따서 컵에다 얼음을 넣고 음료수를 붙고 양주를 조금 부어서 익숙한 솜씨로 흔들어서 나한테 내밀었다.

 

“자 누님은 취하면 안 되니까 이렇게 드세요….”그러고 자기는 작은 잔에 양주만을 부어서 들었다.

 

 

“아니, 왜 나는 취하면 안 돼?”

 

내가 약간 뾰로통하게 물어보자, 정민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누나 취하면 내가 따먹을지도 모르는데. 후후….”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속으로 내가 어쩌면 기대하고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내색 없이 말을 받았다.

 

 

“그럼, 너도 취하지 마. 내가 너 따먹을 수도 있어. 호호….”

 

“헉…. 그럼 나 병째 마셔야 하겠네. 하하하….”

 

우리는 기분 좋게 건배했다. 

 

정민은 한잔을 바로 비웠고 나는 한 모금 마시고 정민의 잔에 술을 따라 줬다. 

 

다시 과일 안주가 나오고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치고 한잔을 더 비웠다. 

오랜만에 마시는 양주인데도 쓰다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도우미 아저씨 노래 한번 해봐요….”

 

“네…. 누님,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음, 일단 발라드로….”

 

“네.”

 

정민은 익숙하게 찾아보지도 않고 번호를 눌러 노래를 골랐다. 이승철의 ‘듣고 있나요’였다. 

 

 

노래가 시작되자 의외였다. 이승철만큼은 아니지만, 분위기 있게 잘 불렀다. 

나는 ‘오빠!’를 외쳤다. 정민은 나에게 윙크를 보내며 더 분위기를 잡으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나는 열심히 손뼉을 쳐주었다. 

그리고 다시 술잔을 비웠다.

 

나와 정민이 돌아가며 한 곡씩을 더 불렀다. 

술도 몇 잔을 더 마시자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취기가 올랐다.

 

어느새 우리는 일어서서 둘이 어깨동무하며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술기운 탓인지 너무 즐거웠다. 

정민의 허리를 감싸안고 정민에게 안기다시피 해서 박자에 맞춰 같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잠시 후 정민이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나, 이 노래 너무 좋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정민이 부르기 시작하자 머리를 정민의 몸에 기대며 노래를 음미했다. 

그러자 정민이 내 어깨에 얹은 팔에 힘을 주며 내 몸을 돌려 자기 품으로 끌어안았다.

 

나는 어느새 정민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너무 좋았다. 

정말 몇 년 만에 안겨보는 남자의 품이었다. 

술에 취해, 노래에 취해, 남자의 냄새에 취해, 나는 그저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민은 나를 안은 팔에 더 힘을 주며 나를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 

나도 자연스레 두 팔로 정민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정민에게 몸을 맡겼다.

 

그런데 몸이 밀착되자 아랫배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나는 그게 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딱딱한 것이 내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걸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밑이 뻐근해지며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정민의 느낌을 나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노래가 끝나자 정민이 팔에 힘을 풀며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정민의 입술을 같이 음미했다. 

정말 달콤했다. 

정민의 부드러운 혀가 내 입속에서 춤을 췄다. 

나도 정민의 혀를 뽑아내기라도 할 듯이 빨아들였다.

 

 

어느새 나는 밑이 뻐근하다 못해 이제는 가려울 지경이었다. 

자꾸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정민의 물건은 더 딱딱해진 상태로 내 아랫배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아….”

 

한참의 키스가 끝나가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정말 정민은 키스를 잘했다. 

한 번의 키스만으로도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 듯한 기분이었다. 

키스가 끝나자,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정민은 마이크를 소파에 던지고 다시 두 팔로 꼭 껴안더니 다시 내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격정적이었다. 

아까는 달콤한 키스였다면 이번에는 불같은 키스였다. 

 

두 팔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나도 정민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정민을 느꼈다.

 

정민의 손이 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가 다시 쓰다듬었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정민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정민이 몸을 살짝 굽혀 내 목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제 나는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정민이 한 손으로 내 치마를 걷어 올리더니 팬티 위로 내 엉덩이를 쓰다듬더니 허벅지를 만졌다. 

그러고는 불쑥 손이 나의 중요한 부위 쪽으로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주며 허벅지를 닫았다. 

정민의 손이 살짝 팬티 위로 그곳에 닿았다가 나왔다. 

정민도 이미 그곳이 축축해진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잠시 후 정민이 팔에 힘을 풀고 몸을 뗐다.

 

 

“누나랑 하고 싶어….”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정민을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여기서?”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 말뿐이었다.

 

 

“아니, 우리 나가자….”

 

정민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얼음물을 한잔 들이키더니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폈다. 

 

 

정민은 내 손을 잡고 바로 옆에 있는 모텔로 향했다. 

혹시라도 내가 도망을 갈까 봐서인지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너무 흥분돼서인지 어떻게 모텔로 들어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정민은 다시 나를 강하게 끌어안고 키스하면서 내 옷을 벗기고 있었다. 

나도 정민의 손을 도와주듯 같이 내 옷을 벗었다.

 

 

윗옷을 벗기자, 브라 어깨끈을 내리고 내 가슴을 꺼내서 입으로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나는 온몸이 흥분으로 휩싸였다. 

이제는 나도 주체를 할 수 없었다.

 

가슴을 빨며 정민은 내 치마를 밑으로 내리고 내 배에 키스했다. 

나는 고스란히 정민의 애무를 느끼고 있었다.

 

 

정민은 나를 안고 침대에 눕히고는 자기도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누워서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위에 올라온 정민은 다시 내 가슴을 빨다가 점점 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손은 팬티 위로 나의 중요한 부위를 만지고 있었다. 

그곳은 나도 모르게 이미 애액이 나와 팬티까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어느새 정민이 팬티마저도 벗겨 버렸다. 그러고는 두 팔로 내 다리를 벌리고 얼굴을 다리 사이에 묻었다.

 

 

“아…. 안돼…. 씻어야 하는데….”

 

정민은 대답 대신 혀로 내 보지를 핥기 시작했다. 입으로 빨아들이다가 핥기를 반복했다.

 

 

“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정말 좋았다. 

정민은 정말 부드럽게 잘 빨았다. 

나는 속으로 ‘어서 넣어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잠시 후 정민이 다시 내 위로 올라왔다. 

가볍게 키스하며 내 다리 사이에서 자신의 몸을 나에게 밀착시키기 시작했다.

 

 

살짝 근처에 묵직한 것이 닿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내 보지 속으로 정민의 그것이 밀고 들어왔다. 

 

 

“아….”

 

정말 오랜만에 들어오는 남자였다. 느낌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벌려 정민의 몸을 기쁘게 받았다. 

 

 

반쯤 들어오던 정민이 다시 몸을 움직여 운동을 시작했다. 

가벼운 몇 번의 피스톤 운동이었는데도 나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이미 정민의 애무에 흥분의 극에 달해 있었던 상태였다. 

 

정민의 본격적인 허리 운동이 시작되자 나는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민이 힘차게 밀어 넣자, 정민의 물건이 내 속의 깊은 곳까지 닿았다. 

나는 정민의 등을 부여잡았다가 정민의 가슴을 만지며 온몸으로 정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민은 내 치골에 아랫배가 때릴 만큼 강하게 박아대고 있었다.

 

“악!”

 

나는 온몸에 힘을 아랫도리에 줘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갑자기 정민이 탄식을 토해냈다. 

순간 나는 보지 속에서 정민의 물건에서 액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민이 가볍게 몸을 떨더니 내 몸 위로 엎어졌다. 

 

 

나는 옅은 한숨을 토해내며 정민의 등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축 늘어져 있던 정민이 몸을 일으켜서 가볍게 나에게 키스했다.

 

정민이 몸을 일으키며 내 몸속에서 물건을 빼내자, 속에서 정민의 정액이 따라서 주르르 흘러내렸다. 

정민이 침대 옆의 휴지를 뽑아내 보지를 닦아 주었다. 

닦아주는 정민의 손길조차도 짜릿짜릿했다.

 

나는 일어나서 밑을 휴지로 막은 채로, 욕실로 향했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변기에 앉자, 밑에서 정민의 정액이 벌컥 쏟아져 나왔다.

 

 

샤워기로 대충 몸을 씻고 나왔다. 곧 정민도 들어가 샤워하고 나왔다. 다시 정민과 나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나, 이런 적 첨이다.”

 

“뭐가?”

 

“응. 나 꽤 잘하는 편인데, 오늘 너무 빨리 싸버렸다.”

 

“그래? 난 진짜 좋았는데….”

 

“정말? 좋았어?”

 

“응”

 

“근데 자기 보지 정말 끝내준다. 아까 참아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 그런데 안에다 싸도 괜찮아?”

 

“응. 나, 둘째 낳고 수술했잖아.”

 

나는 정민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정민의 가슴을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남자의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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