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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마법사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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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02.22

 

"아. 머리야…. 여기가 어디야?"

 

타는듯한 갈증과 세상이 돌아가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나는 서서히 눈을 떴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사물들로 보아 아침인 듯했다. 새벽의 얼마 되지 않는 햇살 사이로 낯선 풍경들이 시각을 찔러왔다. 둥근 형광등, 밝은색의 벽지, 냉장고와 옷장, 화장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눈만을 굴려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바라보면서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2분 정도 정신을 차리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야 내가 어느 여관의 침대 위에서 아침을 맞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 그래. 어제 녀석들하고 술 마셨지…."

 

어제는 한 녀석의 생일이었고, 다른 한 녀석에게는 입대 환송회였다. 생일과 군대 환송회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이상하리만큼 빨리 달구었고, 나를 포함한 녀석들은 엄청난 속도로 술을 들이부었었다. 1차, 2차, 룸까지 갔고…. 결국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술 마시고 필름 끊긴 적이 언제였더라…. 하하."

 

타는듯한 갈증에 물병을 찾아들고 컵을 찾을 겨를도 없이 마셔댔다. 물병의 물을 반 이상 마셔대고서야 비로소 내 코끝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음? 뭐야? 이거…."

 

물병을 손에 든 채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그 냄새의 원인을 찾았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둘둘 말린 채 무엇인가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자궁 속에 들어있는 태아처럼 어떤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다. 

 

"하하. 독사 같은 놈들이라도 챙겨주는 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하는군."

 

어느 녀석인지는 몰라도 그 녀석이 고마웠기에 강렬한 그 냄새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침대를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서 새벽의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셨다. 내 폐 속으로 차가운 아침 공기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 서슬에 놀란 것일까, 침대 위의 녀석이 몸을 움찔하는 기색이 들렸다. 가만가만 침대 곁으로 다가간 나는 이불 끝자락을 잡고서 확 당겼다. 

 

"어? 누구야?"

 

불자락 밖으로 새어 나오는 낯선 냄새는 도저히 남자의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였다. 

 

설마…. 

 

불현듯 내 머릿속으로 번개가 때리듯이 지나갔다. 긴 머리, 좁은 어깨, 익숙지 않은 냄새…. 이불자락 밖으로 드러난 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 누군데 여기 있는 거야?"

 

지난밤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지난밤의 일을 기억하기에는 어제 마신 술이 너무 많았다.

 

"그랬구나. 그게 여자 냄새였구나. 그것참…."

 

나는 아침에 내 코를 자극하던 그 강렬한 냄새를 다시 맡아보았다.

 

"여자라…. 후후."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제의 술자리가 파한 뒤에 친구 녀석들 가운데 한 놈이 이 여관을 잡아주면서 여자를 들여보냈을 것 같았다. 

 

내 손이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여자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후. 어쩔 수 없이 나도 남자란 건가….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낯선 여관방, 낯선 여자의 살냄새, 낯선 아침 공기의 상쾌함…. 그리고 잊었다고 여겼던 욕망…. 

 

어느새 내 손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불을 들추고 있었다.

 

훅….

 

이불이 들춰지자 하얀 다리가 다시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여자의 체취가 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손끝에 와닿는 그 느낌…. 

 

내 오른손은 여전히 여자의 종아리 부근에 놔둔 채 입을 가져갔다. .

 

"음…."

 

마치 불장난이라도 하다가 들킨 꼬마처럼 놀랐던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침대 위에 앉은 채, 넋 나간 사람처럼 창문 밖을 바라보던 내 귀에 다시금 여자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로 누운 여자의 자세 때문이었을까. 드러난 여자의 왼쪽 가슴은 야간 아래로 흘러내린 듯 보였지만 겨드랑이 사이로 낀 이불 때문에 단단히 눌려있었다. 

 

여자의 젖가슴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사물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듯이 도드라져 보이는 여자의 젖가슴은 나를 이상하리만큼 흥분시키고 있었다.

 

나는 끌리듯이 젖가슴에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다가갈수록 여자의 젖가슴은 알 듯 모를 듯 움직였다. 

 

가만히 손가락을 닿을락 말락 뻗었다. 

 

손가락만으로 가만히 눌러 보았다. 내 손가락이 누를수록 여자의 젖가슴은 뒤로 밀리면서도 항의하듯 반발했다. 그리고 여자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쿵…. 쿵…. 

 

지금까지 귓전을 울리던 내 심장과는 확연히 다른 여자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 젖가슴을 감쌌다.

 

꿈틀…. 

 

순간 여자의 상체가 움직였다. 나 역시 그런 여자의 반응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내 오른손은 여전히 여자의 왼쪽 젖가슴을 가만히 부여잡고 있었다. 여자는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예전의 고른 숨소리를 냈고,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안도의 한숨이 뱉어졌다.

 

"흐흐…. 이건 뭐야…. 내가 지금 이 여자 몰래 만지고 있는 거야?"

 

소스라치듯이 놀라는 나 자신이 너무나 우스웠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하는 행동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행동 같아서 더욱 우스웠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창밖으로 햇살이 어둠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겠지.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독사 같은 친구 녀석 중에 한 놈이 화대를 지불했겠지."

 

화대라. 그럼 내가 이 여자를 돈으로 산 것인가…. 본적도 없는 여자를, 그것도 돈이 매개가 된 여자를 만질 정도로 내가 목말랐던가….

 

햇살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베개에 파묻힌 채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가리고 있었다.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작고 창백했다. 이제 막 성년이 된 듯한 얼굴에는 아직 솜털이 남아 있는 듯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 나이에 낯선 남자를 따라 여관에 들어와 있었던 걸까.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한 여자의 모습이 서서히 떠올라 나를 감쌌다. 그때도 이랬었지…. 잠든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고 사랑스러웠지….

 

그 순간, 커튼이 크게 흔들리며 차가운 새벽바람이 침대로 밀려들었다. 그 바람에 놀란 듯, 감겨 있던 여자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지더니, 이내 서서히 눈꺼풀이 열렸다.

 

내 눈과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여자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시선을 내게 고정하고 있었다.

 

여자의 눈길이 자신의 귓가에 어색하게 멈춰 있는 내 손으로 향했다. 그제야 내 손이 거기 있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서….

 

그 순간, 내 손이 멀어지는 것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여자가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오른손을 잡았다. 마치 자신의 젖가슴과 다리를 더듬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겠다는 듯이…. 동시에 여자의 입가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나 여자의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이 미소임을 알아채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싱긋 웃어 보였다.

 

내 손은 무언가에 가 닿았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자는 내 손을 자신의 젖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손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손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나는 다시 여자의 눈길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 손을 누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느낀 듯 여자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했지만, 그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뭐?"

 

"아무 말 말아요. 그냥…."

 

그렇게 말한 여자는 내 오른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여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 앳되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어리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는 알겠지만, 자신이 원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텐데…. 지난밤에 받은 돈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이 애는 너무 닮았어.

 

"이 애를 안는다고?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너 안고 싶은 거야? 이렇게 어린데?"

 

내 생각을 읽은 것일까, 여자의 손이 자신의 젖가슴을 누르고 있는 내 오른손을 좀 더 강하게 당겨왔다. 그 바람에 누워있는 여자 쪽으로 상체가 기울어지고 말았다. 

 

"싫으세요? 제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그냥 안아주세요. 제가 싫지 않다면요."

 

우리 두 사람의 눈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다. 여자는 몸을 뒤척이면서 내 목을 감았다. 

 

이불이 젖혀지면서 여자의 살냄새가 확 다가왔다. 내 오른손은 여자의 젖가슴을 누르고 있었고, 여자의 두 팔은 내 목을 감고 있었다. 여자의 눈은 부드러웠고, 무언가 목말라하는 듯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여자를 안고 말았다. 얇은 이불을 사이에 두고서 내 심장과 여자의 심장은 마주하게 되었다. 내 심장만큼이나 격하게 뛰고 있는 여자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의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가만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순간 여자의 몸이 움찔하면서 내 폼 속으로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그 움직임이 귀여웠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내 목을 감은 두 팔은 나를 힘주어 안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모르는지만 그렇게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드러난 여자의 어깨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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