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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져주겠니?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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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 02.21

 

1. 만남

 

 

어느 한 여름, 햇볕이 내리쬐다 못해 강렬한 자외선이 피부를 태워버릴 듯한 오후, 한 소년이 한 사람이 걷기에도 힘겨운 좁은 골목길을 책가방을 멘 채 걸어가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대근….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은 혼자 외롭게 길을 걷고 있었다. 결혼도 못 한 삼촌의 고시원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온 소년은 계속해서 양옆이나 뒤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좁을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야 대근이! 어디 가냐?”

 

“어…?

 

”뭔가 일진이 안 좋은 듯 소년의 혈색이 많이 어두워졌다.

 

‘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

 

골목길 너머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일행 둘이 대근을 부른 듯 보였고, 대근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꽤 불량하게 보이는 아이 둘은 대근과 키가 엇비슷하거나 작아 보였는데, 학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대근아.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응. 지금 지, 집에 가려고….”

 

사실 그 둘은, 대근을 몇 해 전부터 괴롭혔는데, 실제로 나이는 1살 더 어렸다. 그리고 반말하는 것이 귀에 거슬렸지만, 대근은 딱히 그 부분을 문제 삼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보였다.

 

아이 둘 중 하나가 대근에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능청스럽게 다가와 다짜고짜 협박하듯 말을 내뱉었다.

 

“돈 있으면 돈 좀 줘 봐”

 

“오늘 돈 없어.”

 

“이게 진짜 이럴 줄 알았다니까. ㅋㅋ”

 

기분 나쁜 둘의 웃음소리에 화도 날법했지만, 그럴 용기가 부족한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없어.”

 

“이게? 너 좀 맞고 시작하자.”

 

그때였다.

 

“야! 거기, 꼬맹이들 뭐 하는 거야?”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 불량한 아이들 뒤쪽으로 걸어오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 맞기 전에 여기서 안 꺼져?”

 

얼굴은 곱게 자란 듯했지만, 검은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잘 식별되지 않았다. 키는 약 170cm로 보였으며, 대근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특히, 모자 아래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에서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아, 존나 재수 없네. 그냥 가자.”

 

두 불량한 아이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눌린 듯 바닥에 침을 뱉고는 골목길을 벗어날 때까지 연신 고개를 돌려 대근과 그를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

 

“괜찮니?”

 

그 역시 긴장했는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대근을 보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근은 그의 얼굴 대신 땅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한테 신경 꺼주세요.”

 

대근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 골목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고시원 입구로 사라져 버렸다.

 

 

감사의 인사를 받으려던 의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아 야구 모자를 쓴 그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소년이 고시원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 자리에서 떠났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대근은 아무도 없는 좁은 고시원 단칸방의 작은 싱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본 게 몇 주 전일 정도로 둘 사이는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었다. 외삼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서로 왕래가 없었고, 오히려 외삼촌이 집에 있을 때 더 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 번씩 집에 들릴 때면 용돈을 놓고 가고는 했는데, 고시원의 방값과 생활비를 챙겨주는 외삼촌에게 따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대근은 그저 평범한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이 소년의 유일한 행복은 평소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 아이들과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부모에 대한 증오를 자신의 그림에 투영하는 것이었고, 어쩌면 전형적인 ‘중 2병’ 말기 환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저 또래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년에게 따로 친구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산 것은 아니기에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학교에서도 자신처럼 왕따당하는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는 따로 대화할 상대도 없는 외로운 아이였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늦은 오후, 대근은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김 하듯 떠올렸다…. 골목길에서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뺏길 뻔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준 그 형의 모습도 떠올렸다.

 

고맙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서서 자신을 도와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비슷한 상황에서 반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모두 방관자처럼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묵시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런 것을 오히려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 익숙했던 대근에게 오늘의 일은 꽤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지 않은 도움에 당황해서였는지, 그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비겁했던 자신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이 낯설었을까? 감사의 표현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대근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주린 배를 참으며 해도 떨어지지 않은 늦은 오후에 요란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잠이 든 탓에 새벽에 일어났다.

 

고시원이 위치한 골목은 한 번씩 만취한 아저씨들의 소란만 없다면 사람도 잘 다니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좁은 골목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역시 조용했다.

 

골목길 너머, 껑충 뛰면 닿을 듯한 가까운 건물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그 건물도 원래는 오래된 고시원이었지만, 최근 개조되어 개인 화장실이 딸린 작은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근은 자신의 고시원에 사는 대학생 형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실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원룸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끝내서인지 최근까지 계속 비어 있었는데 오랜만에 새어 나오는 빛이 신기한지 그 빛을 따라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대근은 눈을 비비며 게슴츠레 졸린 눈으로 커튼 사이 작은 빈틈 사이로 자신과 마주한 그 원룸을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그 원룸을 주시하던 대근의 눈에 박스를 힘겹게 옮기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낯이 익었다. 키는 여자치고는 꽤 커 보였고 머리카락은 쇄골 정도 내려오는 웨이브 섞인 머리였는데 꽤 예뻤다. 하지만 그에 맞지 않게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남학생 체육복 같은 파란색 줄무늬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로 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체육복 상의 지퍼 사이로 살짝 보이는 가슴골이, 꽤 자극적으로 소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두꺼운 체육복을 입고 있어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지만, 깊은 가슴골과 견주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엄청나게 풍만한 가슴임이 분명했다.

 

“!....”  

 

맞은편에 위치한 대근의 방과 너무 가까워서 소리가 들릴까 봐, 대근은 숨소리조차 쉽게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그녀의 터질 듯한 몸매에 눈이 홀린 듯, 어두운 방의 커튼 사이로 말없이 계속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스를 다 정리했는지 기쁜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너무 열심히 정리한 탓인지, 손으로 쇄골 사이를 부채질하는 그녀의 양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니큐어가 발라지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녀의 손은 단정하고 유난히 깨끗하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손이 부자연스럽게 입은 자신의 체육복 상의로 다가가더니, 더운 탓인지 천천히 지퍼를 내렸다. 가까운 거리 탓으로 지퍼 소리가 대근의 귀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깊고 터질듯한 가슴골이 체육복 사이로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퍼가 조금씩 내려갈수록 소년의 그곳이 소년의 의지와는 다르게 점점 단단해지며 발기하기 시작했다.

 

 

“헉…” 

 

이제 갓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대근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듯, 이내 다리가 풀리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뇌쇄적인 모습을 관찰하던 두 눈 역시 동공이 풀린 듯이 보였고, 잠시지만 짧은 현기증을 느끼는 듯했다.

 

소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커튼 사이로 더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다시 건넛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그곳은 불이 꺼져 있고, 커튼도 닫혀 있었다.

 

“…………”  

 

소년은 너무 아쉬운지 다시금 침대에 누워 그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지우기 아쉬운 그녀의 모습을 자신의 장기를 살려 작은 스케치북에 그리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그녀는 여신 같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저런 사람은 분명 남자 친구도 있을 테고, 나 같은 거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자신감을 상실한 채 살아온 소년에게 여자는 항상 어려운 존재였고, 때로는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존재였다.

 

소년은 몰려드는 자괴감으로 눈물이 맺혔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대근은 하루에 몇 번씩 창문 밖으로 그녀를 찾았지만, 그날 이후 한동안 커튼이 닫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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