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실망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삼촌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한 1주일이 넘은 듯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관계는 아니었기에 삼촌의 행방이 궁금한 적은 없었다.
대근은 무심코 자신의 카키색 반바지를 쳐다보았다. 아직 시큰거리는 고추는 어제보다 많이 나아졌다. 누나의 부드럽고 따스한 그 손길도 한몫한 듯 보이지만, 분명 어제 느꼈던 그 강렬했던 쾌감이 큰 효과가 있는 듯했다. 대근은 고추 뿌리에서부터 밀려왔든 간지러운 그 쾌감이 아직도 남았는지 바지 위로 고추를 한번 살짝 움켜쥐었다.
아침은 한낮의 강렬한 태양 비하면 한가로운 봄날의 햇살 같았다. 대근은 아직도 완전히 잠에서 깨지는 못했는지, 얼굴을 비비며 창문 밖 풍경을 보았다. 그러던 대근은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커튼이 처져 있는 맞은 편 그 누나가 사는 방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다시금 어제 일을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어제 처음부터 누나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기 고추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의 정액을 그 이쁜 얼굴에 쏟아내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분명 모자를 너무 깊게 눌러써서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남자로 오해했고, 무엇보다 고추를 보여달라고 한 것은 누나가 먼저였다.
애써, 그 스스로 뭔가 죄지은 느낌에서 벗어나고픈 소년의 머리가 꽤 복잡해졌을 즈음에 아침에 먹을 우유를 사기 위해 대근은 고시원을 나섰다. 그리고 고시원을 나와 골목길에 들어서자 먼 거리에서 짧은 분홍색 핫팬츠와 타이트한 하얀 티셔츠를 입은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꽤 신경 쓰고 입은 게 소년의 눈으로도 분명히 느껴졌다.
“대, 대군아!”
“네?”
“어제 잘 잤니?”
“네.”
어제 일이 꽤 부끄러운 듯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대근과 마찬가지로 옥희 역시 아직 양쪽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근의 힘없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옥희는 말을 이었다.
“거기, 거기는 괜찮니?”
“네? 네…. 많이 나아졌어요.”
“다행이다.”
대근은 용기 내어 옥희를 쳐다보았다. 바로 옥희의 엄청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헉….”
“왜 그래?”
“아, 아니에요.”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옷차림에 대근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항상 가슴을 압박붕대로 동여매고 외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근 역시 부끄러운지 아까부터 말을 더듬고 있었는데 그런 대근의 모습이 아주 귀엽게 느껴졌다.
대근과 대화하면 할수록 그의 순수함에 호감을 느끼던 옥희는 이상한 감정이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느낌이 점점 강해질수록 그녀 역시 부끄러웠는지 언제부터인가 대근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참! 내 소개를 안 했구나!”
“네?”
“내 이름은 옥희라고 해!”
“오, 옥희 누나요?”
“응.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 아니, 아줌마라고 불러야 하나?”
“누, 누나라고 부를게요.”
대근은 옥희를 바라보았다. 짙은 화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예쁘고 귀여웠다. 언뜻 보면 고등학생이라고 할 만큼 동안이었고, 작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보기 힘든 미인이었다. 그리고 짙은 화장으로 잘 가려지지 않는, 아랫입술 아래 위치한 작은 점은 매우 섹시하게 보였다.
대근이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녀의 얼굴이 그녀의 붉은 입술처럼 달아올랐다. 정말 너무나도 귀여웠다.
“대, 대근아.”
“네?”
“오늘 뭐 해?”
“네?”
그 누구도 자신의 일과에 관해 물어보는 이가 없었는데, 처음 받는 이런 질문에 놀랐는지 조금 망설였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일이 태어나 한 번도 없었기에 조심스러운 것은 당연한 듯 보였다.
“자, 잘 모르겠어요.”
“오늘 특별한 것 없으면 누나 따라올래?”
“누, 누나요?”
“그럼, 누구겠니?”
“어, 어디 가는데요?”
“싫으면 말고!”
대근은 천천히 옥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 부끄러워하는 옥희의 귀여운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방어적이었던 그의 마음이 조금 녹아 내린 듯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용기 내어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면 안 돼요?”
“사실 그게, 누나 일하는 곳에 같이 가자고….”
“이, 일하는 곳이요?”
“응.”
“갑자기 왜?"
옥희가 밝은 표정으로 농담하듯 말했다.
“너, 내 PT 고객 만들어서 돈 좀 더 벌려고 한다. 왜!”
“PT?”
“퍼스널 트레이닝을 PT라고 불러. 누나는 트레이너고.”
“근데 뜬금없이 왜 저를 거기에?”
“누나 발에 한 번 차였다고 비실거리니까, 진짜 남자로 만들어 주려고….”
대근은 정말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싫어요!”
“걱정하지 마! 공짜로 해줄게!”
“그래도 싫어요!”
“왜?”
“그런 것 다 의미 없어요!”
“왜 의미가 없어?”
대근은 그런 것을 배워봤자,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졌고 자신의 현실을 타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어차피 자신 혼자 이 상황을 바꾸는 건 무리고, 혼자인 개인이 다수의 아이를 상대해서 이길 승산은 누가 보아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잘못돼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다면 더 괴롭힘을 당할 뿐이라는 계산도 있어 보였다.
그렇게 망설이는 대근 앞에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귀여운 소녀가 다가왔다. 일면식도 없던 소녀는 대근 앞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오빠. 안녕하세요?”
옥희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는지 대근에게 물었다.
“대근아. 누구?”
“저도 잘….”
“오빠. 우선 이거….”
길거리에서 만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쳐다볼 귀여운 소녀였는데, 정성을 다해 곱게 접은 파란 파스텔 색 편지를 대근에게 건네주었다.
“근데, 이걸 왜?”
누가 보아도 고백이 담긴 듯한 풋풋하고 귀엽게 생긴 편지에 대근은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옥희가 신경 쓰였는지 옥희를 쳐다보았다.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근의 눈엔 옥희가 놀란 표정을 넘어 질투심이 눈가에 서려 있는 거 같았다.
“오빠 혼자 있을 때 보세요. 그리고 마음에 있으면 오늘 낮 2시에 학교 운동장에서 봐요.”
“어?”
귀여운 소녀는 편지를 건네주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대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일이 어제부터 계속 생기자,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어디 간 거지?”
대근은 주위를 돌아보며 옥희를 찾았다. 멀리서 뒤도 안 돌아 보고 걸어가는 옥희가 눈에 들어왔다. 쫓아갈지 고민했지만, 멀어져 버린 옥희를 따라잡긴 힘들어 보였다.
“수고하셨어요! 코치님!”
“아니에요! 오늘 프로그램, 조금 벅차셨을 텐데 너무 수고들 많으셨어요!”
“그럼 다음 주에 봬요!”
“네. 식단표대로 꼭 드시고 몸무게도 기록해서 꼭 챙겨 들고 오세요! 다음에 봬요!”
옥희는 마지막 PT까지 깔끔하게 마쳤다.
오늘은 고객의 자세 교정을 위해 시범 동작을 연속으로 보여줄 때도 많았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도 땀을 많이 흘리는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옥희는 마지막 고객까지 정중히 배웅하고 강의실에 배치된 거울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압박붕대 없이 거울 앞에 선 모습이 조금 부자연스럽기는 했지만, 나름 파란색 머리핀을 이용해 이마를 들어낸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만족스럽게 보였다.
옥희는 탈의실로 향했다.
“야! 저 코치 죽이지 않아?”
“그러게, 가슴이 죽여준다. 저거 수술한 거 아냐? ”
“아, 시발! 수술했어도 한번 주물러 보고 싶다. 저 정도면!”
아직 총각 닦지도 못 땐 듯한 젊은 남자 트레이너들이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그녀에 대해 외설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옥희는 워낙 많이 듣던 이야기라 처음에는 별 반응하지 않았지만, 점차 신경 쓰여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그 둘 중 하나가 조용히 다가와 옥희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일하는 게 오늘 처음이죠? 괜찮으면 술이라도 한잔해요!”
그들의 작업 멘트에 옥희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저, 술 못해요.”
“그러면 커피라도….”
“죄송해요. 커피도 안 마셔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단번에 거절하고 돌아서서 탈의실로 향했다.
“아. 존나 비싸게 구네!”
“그러게. 어차피 아쉬운 건 자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ㅋㅋ”
평소 같으면 무시할 법한 옥희가 약간 짜증이 났는지 다시 되돌아서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중 가장 덩치가 큰 트레이너에게 다가가더니 발을 꾹 짓밟으며 말을 이었다.
“같은 곳에서 일해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너 몇 살이야?”
“26….”
“인마! 너보다 한참 나이 많은 여자 희롱하면 좋아?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껄떡이면 죽을 줄 알아!”
“………”
아무 말 못 하는 둘을 뒤로하고 다시 뒤돌아 탈의실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얼굴만 반반하지, 성깔 더럽네!”
“그렇게….”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처음 보는데, 넌 좀 얼굴만 예쁘다 싶으면 어디서 꼭 봤다고 하더라.….”
“그런가?”
“그건 그렇고, 좋겠다! 저런 여자랑 사귀는 사람은!”
“나하고 사귀면 확실히 만족하게 해줄 텐데….”
“말은 존나 잘해요. ㅋㅋ”
“근데 진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옥희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탈의실에 와서 거울을 보았다. 자신을 두고 희롱하든 남자들 때문인지 그녀의 미간은 아직도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던 중 어제의 일이 기억나면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본 남자의 물건과 그 물건이 뿜어낸 엄청난 양의 정액…. 그리고 그 대상이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경험보다 자극적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옥희는 계속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자, 자신을 추스르며 애쓰는 듯하였다. 하지만 쉽게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